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 일기(대림 제2주간 화요일)
환대하는 기쁨으로 삽시다….
어린이 그림책 ‘달달 책방’에 ‘선물’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새 신을 신고 할머니와 놀러 갔습니다. 신을 벗고 개울에서 놀고 있는데, 그만 고양이가 신발 한 짝을 물어 가버렸습니다.
아이가 신발을 신으려다 한 짝이 없어진 것을 보고 한참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숲에서 그 신발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신발 속에 참새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차마 참새를 깨워 날려 보내고 그 신발을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 손을 잡고 그냥 가자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는 나누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찾은 것입니다.” 아멘.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길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의 양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 찾으면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기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과연 양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이 옳으냐? 하는 이해하기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마리 찾으려다 더 많은 양을 잃어버릴 수 있고, 게다가 맹수나 강도를 만나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양 치는 일이 아니라 영적인 가르침을 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 영적인 가르침이 뭘까요?
왜냐하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길 잃은 양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실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한 마디로 업신여김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업신여김을 당한 양을 쓸모없다고 버리는 일이 없는 ‘길 잃은 양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입니다.
또한,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가시에 찔려 피가 나더라도 잃어버린 못난 양을 절대 포기하지 않은 ‘길 잃은 양에 대한 예수님의 수고’입니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게 되면 더 기뻐한다는 것은 아흔아홉 마리도 길을 잃지 않고 잘 있다는 기쁨이고, 잃은 양을 다시 살 수 있게 해 주고, 우리 안에서 보살핌을 받게 해 준 것에 대한 기뻐하는 것입니다.
특히, ‘길 잃은 양을 찾은 후에 알 수 있는 예수님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입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은 “당신을 믿는 이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자애로운 마음”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는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아니 지금 고운님들 자신에게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부서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 고운님들을 축복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고운님들이 그 부서진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없지만, 단 한 가지 고운님들이 환대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복음 25장 40절).”
그 ‘환대는 내가 길 잃은 양에게 작으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뿌듯함에서 오는 더 큰 기쁨’을 찾게 합니다.
즉 ‘내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고운님들에게 다가오는 그 한 사람에게 기도와 나눔으로 환대하면서, 길 잃은 양을 찾은 큰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환대하는 더 큰 기쁨을 누리며,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들에게도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내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담고, 고운님들의 삶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환대하는 기쁨으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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