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송봉모 신부님께서 쓰신 “광야에 선 인간”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묵상해 봅니다.
“이 세상은 두 얼굴이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의 얼굴은 고통의 얼굴이고, 또 하나의 얼굴은 보살핌의 얼굴입니다.
첫 번째 얼굴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통의 얼굴만 바라본다면, 항상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랍니다.
하느님께서 굶어 죽지 않도록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만나를 내려 주었더니, 그 만나 때문에 입맛마저 버렸다고 불평합니다(탈출기 16장. 민수기 11, 4~6절).
어찌 보면,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고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가 고통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얼굴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느님의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돌보심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느님만이 강하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강하니까, 하느님께서 저희를 도와주실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느님의 시작입니다.’
‘인간의 절망이 하느님의 기회입니다.’
‘인간이 내려놓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얼굴을 쳐다본다면 절망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겠지만, 반대로 하느님의 보살핌의 얼굴을 본다면 하느님께서 저희를 도우실 것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 저희는 고통의 얼굴이 아니라 하느님의 돌보심에 얼굴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하느님의 돌보심으로 예수님에게 지극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복음 1장 29절)’으로, ‘나타나엘’은 ‘하느님의 아드님, 이스라엘의 임금님(요한복음 1장 49절)’으로, ‘마르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요한복음 11장 27절)’으로,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복음 20장 28절)’으로 ‘바오로’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사도행전 9장 20절)’으로, ‘베드로’는‘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심(마태오복음 16장 16절)’을 고백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 사도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복음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자명한 것은 베드로 사도의 이 신앙 고백에는 3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 삶의 주인이심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르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릴 것이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어느 고운님께서 쉬는 교우로 살아갈 때,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점쟁이가 “성당이나 열심히 다녀. 여기 오지 마!”라고 소리쳐 놀란 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고운님은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자명한 것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주님의 햇살과 밝은 기운을 지닌 진짜 예수쟁이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지금 세상 한복판에 살아가고 있는 고운님들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때 고운님들은 큰 소리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니 저희는 진짜 예수쟁이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고운님들에게 “저는 진짜 예수쟁입니다.”라는 말은 “오늘 밤 죽을지라도, 잠깐 잠을 잔 듯 눈을 뜨고 나면 하느님 품속에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루카 복음 11장 1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아멘.
저 두레박 사제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 일기를 마무리하면서….
‘주님의 밝은 햇살 기운’을 지닌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고운님들은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과 은총을 찬양하고 영광을 드리면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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